하루 종일 밭일에 지친 어머니는 평소 같으면 저녁 여덟 시만 되어도 골아떨어지시곤 했습니다. 그런데 아홉 시가 넘어 잠자리에 들려고 보니 어머니가 방에도, 마당에도 보이지 않으셨습니다. 사방이 캄캄해지고 시계가 밤 열한 시를 넘겼을 때, 삐걱하고 사립문 열리는 소리가 났습니다. 어둠 속에서 들어서신 어머니 머리 위에는 커다란 보자기가 얹혀 있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이십 리 밤길을 홀로 걸어 읍내에 다녀오신 어머니였습니다. 풀어진 보자기 안에서 나온 것은 낮에 친구 집에서 보았던 바로 그 커다란 카세트 녹음기였습니다.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당시 쌀 한 가마니 값이나 하던 비싼 기계를 살 돈이 어머니 손에 있을 턱이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읍내 전자제품 가게 주인을 붙잡고 사정사정하셨던 것입니다. 올가을에 나락을 베어 꼭 갚을 테니 제발 외상으로 먼저 달라고, 내 자식 공부 좀 시키게 해달라고 고개 숙여 빌고 또 빌어 얻어오신 것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땀에 젖은 얼굴로 녹음기를 제 앞에 툭 내려놓으시며 아무런 핀잔도, 생색도 내지 않으셨습니다. 형과 저는 그 깊은 마음도 모른 채 마냥 좋아서 밤이 새도록 테이프를 돌려 들었습니다. 문밖에서 가쁘게 헐떡이던 어머니의 숨소리는 우리의 철없는 웃음소리에 묻혀 사라졌습니다.

세월이 흘러 제 머리에도 흰머리가 성성해지고 나서야, 그 밤 어머니가 걸으셨을 깜깜한 신작로 길이 눈에 밟힙니다. 가로등 하나 없던 그 먼 밤길, 머리에 인 녹음기 무게보다 자식의 철없는 말 한마디에 짓눌렸을 어머니 가슴의 무게가 얼마나 더 무거웠을까요. 남에게 고개 숙이며 느꼈을 설움과 부끄러움까지 다 삼키고, 오직 자식 기죽이지 않겠다는 그 마음 하나로 밤길을 밝혀 오셨을 어머니의 사랑에 목이 메어옵니다. 가난했던 제 어린 시절을 환하게 밝혀준 것은 녹음기에서 흘러나오던 영어가 아니라, 자식을 위해 밤길을 마다치 않으셨던 어머니의 끝없는 헌신이었습니다. 그 큰 사랑을 다 갚지도 못했는데, 모진 세월을 다 견뎌내신 어머니는 지금 병상에 누워 몹시 아파하고 계십니다. 주름진 어머니의 야윈 손을 꼭 쥘 때마다, 사오십 년 전 그 밤에 진 큰 빚이 떠올라 가슴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솟구칩니다. 어머니, 아직 갚지 못한 자식의 사랑이 너무 많습니다. 제발 조금만 더 제 곁에 머물러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