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첫 감탄이 잦아들자 이내 서늘한 공허가 밀려왔다. 손가락 몇 번 움직이고 몇 줄의 문장을 건넸을 뿐인데, 이렇게 손쉽게 완성된 노래와 글을 과연 온전히 내가 만든 것이라 부를 수 있을까. 밤을 지새우며 단어 하나를 고르고 지우기를 거듭하던 창작의 고통도, 마음속 깊은 곳을 긁어내어 담는 진심도 없이 태어난 결과물이었다. 너무 쉽게 주어졌기에 오히려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몇 마디를 읊조린 것뿐인데, 그렇다면 이것은 나의 창작인가 아니면 기계의 재주에 불과한 것인가. 쏟아져 나오는 유려한 문장과 멜로디 앞에서, 나는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잃어버린 듯 깊은 회의감에 빠져들었다.

그 뒤로 나는 한참 동안 AI를 만나지 않았다. 경이로움 뒤에 남은 회의감이 쉽게 가시지 않았고, 굳이 다시 화면을 열어보지 않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나 세상은 나의 망설임과 관계없이 저만치 앞서 나아가고 있었다. 이제는 AI와 함께 살아가야 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저 피한다고 해서 달라질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문제는 기계가 나를 대신하느냐가 아니라, 내가 그것을 어떤 태도로 마주하느냐에 있었다. 모든 것을 맡겨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내 생각을 먼저 단단히 세우고 필요한 곳에 도구의 힘을 보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낯선 변화 앞에서 물러서 있기보다 내 방식으로 익히고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내가 시작해야 할 변화의 첫걸음이었다.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고 다시 마주한 기계는 그 짧은 공백 사이에도 한층 더 정교해져 있었다. 나의 사소한 생각을 더 깊은 문장으로 엮어내고, 인간의 고유한 감정마저 눈부시게 흉내 내는 모습을 보며 적응의 끝자락에서 문득 또 다른 두려움이 엄습해 왔다. 과연 앞으로 인간이 온전히 서 있을 자리는 어디에 남아 있을까. 상상조차 해보지 못한 속도로 펼쳐지는 미지의 세상 앞에서 마주하는 모든 미래가 막막하고 불안해진다. 도구에 익숙해졌다고 해서 이 거대한 흐름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가 무엇을 향해 가고 있는지, 인간다움이란 무엇으로 지켜내야 하는지 명쾌한 답을 얻지 못한 채, 나는 거대한 변화의 문턱에 서서 다가올 내일을 두려운 눈으로 응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