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깨 위에 내려앉은 것은 계절의 한기인가, 아니면 지나온 세월의 무게인가. 언제나 앞장서 걸어야 했던 길 위에서 돌아볼 틈도 없이 내달렸던 날들이 가지만 앙상한 나무 끝에 걸려 흔들린다.

주머니 깊숙이 차가워진 손을 찔러 넣고 붉게 물들다 떠나가는 잎들을 가만히 바라본다. 참아내는 것이 익숙해져 버린 침묵 뒤로 가을은 아무런 기척도 없이 깊어가고, 바람 부는 길 끝에 긴 그림자 하나 홀로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