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한마디는 누구를 향한 원망도 아니었고, 듣는 이를 염두에 둔 하소연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밤하늘 저 먼 허공을 향해 무심하게 툭 던져 올린 아버지의 나지막한 독백이었습니다.
그때 나는 초등학생이었습니다. 몇 학년이었는지는 아득합니다. 마당에 깔아놓은 거친 멍석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방학 숙제를 하고 있었는지, 아니면 까만 밤하늘에서 쏟아져 내릴 듯 총총하던 별들을 헤아리고 있었는지도 분명치 않습니다. 나는 그 말에 어떤 대꾸도 하지 못했고,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허공으로 흩어지던 그 한마디는 어린 내 가슴 한구석에 깊고 선명하게 박혔습니다.
세월이 흘러, 고된 농사일로 마디가 굵어지고 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지도 못하시던 그때 아버지의 나이가 되고 보니 그 밤의 기억은 더욱 또렷해집니다. 그리고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저릿한 통증이 밀려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시던 아버지의 옆모습, 그늘져 있던 쓸쓸한 눈빛. 필시 그날 낮, 어디선가 배우지 못한 설움을 온몸으로 곱씹어야 했던 쓰라린 일이 있으셨던 게 분명합니다.
아버지는 학교 근처에는 가보지도 못하셨습니다. 한글을 온전히 깨치셨는지조차 나는 똑똑히 알지 못합니다. 생전에 아버지가 연필을 쥐고 글을 쓰시거나 책을 펼쳐 드신 모습을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글을 모른다고 해서 일상에 큰 불편을 겪는 모습 또한 보이지 않으셨고, 그 시절 유행하던 노래들은 가사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구성지게 잘도 불러 넘기셨습니다.
어머니 역시 학교 문턱을 넘어보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다만 외할아버지께서 어깨너머로 한자를 조금 가르쳐 주신 덕에 한글을 띄엄띄엄 읽으실 줄은 아셨습니다. 우리 집에 오시거나 언니 집에 머무실 때면, 손자 손녀들이 보던 ‘장화홍련전’이나 ‘콩쥐팥쥐’ 같은 낡은 동화책을 손에 쥐고 소리 내어 조곤조곤 읽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의 동화책 읽는 시간을 참으로 좋아하셨습니다.
“내가 배웠다면 이렇게 살지 않을 텐데……”
아버지의 그 혼잣말은 거칠고 메마른 삶에 대한 회한이었을까요, 아니면 채우지 못한 배움에 대한 깊은 갈망이었을까요. 아버지는 흙을 정직하게 일구는 농사꾼이었습니다. 그것도 농사를 참으로 잘 짓는 빼어난 농사꾼이었습니다. 어느 해 면사무소에서 주최한 농사 대회에서 보리 농사 부문 최고상을 받아 쥐고, 어린아이처럼 환하게 웃으며 상금을 자랑하시던 아버지의 당당한 얼굴이 지금도 눈앞에 선합니다.
그토록 억척스럽고 당당했던 농사꾼 아버지가 밤하늘을 보며 나직이 뱉어내셨던 그 말. 그 독백은 내 유년의 뜰을 넘어, 청춘과 성년의 날들 내내 내 그림자처럼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부모님은 우리 육남매에게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학교에 내야 할 육성회비 날이 돌아오면, 형편이 여의치 않아도 이웃집에 고개를 숙여 돈을 빌려서라도 기어이 손에 쥐여 주셨습니다. 자식들의 배움 앞에서는 가난도 핑계가 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의 가슴에 맺혔던 그 배움의 갈증을 씻어내기라도 하듯, 우리 육남매는 모두 저마다의 길에서 치열하게 책을 놓지 않았습니다.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에 진학했고, 공무원 시험에 당당히 합격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오랜 꿈이었던 교육대학에 들어가 마침내 교단에 서는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교실에서 매일 아이들을 마주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지켜보고, 그 여린 싹들이 올곧고 단단하게 자라도록 손을 잡아주는 스승의 길을 걸어왔습니다. 아이들의 맑은 눈망울을 들여다볼 때마다 나는 마당 멍석 위에 누워 있던 그 밤의 나를 보고, 밤하늘을 올려다보시던 아버지를 봅니다.
뼈마디가 닳도록 흙을 파고 거친 땅을 일궈 우리를 이만큼 가르쳐 주신 어머니, 아버지. 두 분이 흘리신 땀방울이 없었다면 오늘의 저는 결코 없었을 것입니다.
엄마, 아버지. 그 고단한 손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셔서 고맙습니다. 참으로 많이 사랑합니다. 그리고 오늘따라 사무치게 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