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 깊은 수하(水下)에서 흙을 일구며 농사를 짓고, 매일 아침 단정히 앉아 단전호흡으로 하루를 여는 내게 지금의 정치 풍경은 실로 위태롭기 그지없다.
농사를 지으며 가장 뼈저리게 배우는 진리는 생명은 결코 억지나 탐욕으로 자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워 결실을 맺기까지, 농부는 계절의 변화와 비바람, 햇살이라는 자연의 순리를 겸허히 따를 뿐이다. 아무리 마음이 조급하다 해도 싹을 억지로 잡아당기면 뿌리가 뽑혀 죽고, 거름을 과하게 주면 땅과 뿌리가 썩어버린다. 봄에 씨 뿌려 가을에 거두는 자연의 섭리, 다름과 다양성을 품어 안는 생태계의 이치를 거스른 농사는 반드시 실패한다.
우리 사회와 정치 역시 이러한 자연스러운 순리를 따라야 마땅하다. 그러나 작금의 정치는 계절을 무시하고 제 고집대로만 세상을 굴리려는 어리석은 농부의 조급함을 빼닮았다.
호흡의 이치로 보아도 마찬가지다. 내가 수행하는 단전호흡의 요체는 먼저 온전히 비워내는 것(呼)에 있다. 가슴과 머리에 맺힌 번뇌와 탁한 기운(濁氣)을 아랫배 깊은 단전으로 가라앉히며 길게 내쉬지 않고서는, 결코 맑고 새로운 숨(吸)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지 않는다. 호흡이 얕아져 머리와 가슴으로만 숨을 몰아쉬면 상기(上氣)가 되어 몸이 굳고 마음은 조급해지며, 결국 중심을 잃고 쓰러지게 된다.
지금 우리 정치가 딱 이 상기된 호흡에 사로잡혀 있다. 저마다 스스로를 절대적인 정의라 믿으며, 내 주장과 분노로 가슴을 가득 채운 채 숨을 내쉴 줄 모른다. 비워내지 않으니 상대방의 고통이나 국가의 미래를 담을 여백이 없고, 들이마시기만 하려 드니 스스로 질식할 지경에 이르렀다.
돌이켜보면 우리는 이미 이념의 장벽을 부수고 하나가 되었던 기억을 품고 있다. 2002년 뜨거웠던 여름, 전국 방방곡곡의 광장을 가득 메웠던 붉은 물결을 기억한다. 박수 소리에 맞춰 남녀노소, 동과 서의 구분 없이 터져 나오던 하나의 함성 속에는 좌도 우도, 보수도 진보도 없었다. 처음 보는 옆 사람의 손을 맞잡고 함께 뛰며 눈물을 흘리던 그 순간, 우리는 오직 하나 된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있었다. 서로를 배려하고 스스로 질서를 지키던 그 모습이야말로 우리 핏속에 흐르는 진정한 화합과 연대의 본래 얼굴이었다.
진정한 통합은 모든 사람의 생각을 억지로 하나의 틀에 끼워 맞추는 획일화가 아니다. 들판의 흙이 온갖 미생물과 풀뿌리를 품어 풍성한 생명을 키워내듯, 서로 다른 빛깔과 생각을 인정하고 제자리를 찾아주는 것이 진정한 통합이다.
그 출발점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비움과 경청이다.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겸허함으로 내 안의 고집을 한 호흡 비워낼 때 비로소 상대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단전(丹田)이 우리 몸의 무게중심이자 생명의 뿌리이듯, 사회 역시 양극단의 소음에서 벗어나 상식과 순리라는 본질적인 중심을 회복해야 한다.
억지를 부리면 순리가 깨지고, 중심을 잃으면 쓰러진다. 좌와 우라는 낡은 삿대질을 멈추고, 이제는 정치가 먼저 가쁜 호흡을 내려놓아야 한다. 묵은 증오의 숨을 깊게 내쉬고 자연의 순리로 돌아갈 때, 내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 땅에 그 맑고 거대한 상생의 숨결이 다시금 살아 숨 쉬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