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다. 무슨 까닭이었는지 그날은 유난히 일찍 일어났다. 나는 마루 끝에 걸터앉아 두 다리를 달랑거리고 있었다. 그때 아버지가 산더미 같은 소풀을 지게에 짊어지고 마당으로 들어오셨다. 아버지는 지게를 내려놓으려고 천천히 등을 돌리셨다.

그 순간, 푸른 소풀 위로 번진 고운 빛이 눈에 들어왔다. 소풀 위가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아버지가 산에서 따 온 산딸기를 소풀 위에 주렁주렁 얹어 놓으신 것이었다. 이른 새벽부터 소에게 먹일 풀을 베면서도, 아버지는 풀숲의 산딸기를 그냥 지나치지 않으셨다. 어린 자식들에게 가져다주려고 한 알 한 알 따서 지게 위에 고이 얹어 오신 것이다.

그 산딸기를 나 혼자 몰래 먹었는지, 자고 있던 언니와 동생들을 깨워 함께 나누어 먹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달았는지 새콤했는지, 그 맛조차 이제는 희미하다. 그런데도 산더미 같은 소풀 위에 놓여 있던 빨간 산딸기의 모습만은 선명하다. 세월이 흘러도 그 장면은 좀처럼 내 곁을 떠나지 않았다.

돈이 없어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활비를 벌 때도 그 산딸기가 생각났다. 시내버스를 탈 돈이 없어 먼 길을 걸어 다닐 때도, 문득 푸른 소풀 위의 빨간 산딸기가 떠올랐다. 힘겨운 날이면 나는 그 모습을 마음속에 가만히 꺼내 보았다. 그러면 다시 씩씩하게 일어설 수 있었다.

아버지는 내게 힘내라는 말씀을 길게 하신 적이 없었다. 다만 무거운 소풀을 등에 지고 오시면서도 그 위에 작은 산딸기를 얹어 오셨다. 먹고살기 바쁜 삶 속에서도 자식에게 줄 기쁨 하나를 잊지 않으셨다. 그 붉은 열매에는 말로 다 하지 못한 아버지의 마음이 담겨 있었다.

평생 농사를 지으신 아버지는 일흔 무렵 손가락을 제대로 구부리지도 못하셨다. 흙을 움켜쥐고 농기구를 붙들었던 세월이 손마디마다 굳어 있었다. 그 굽지 않는 손가락을 바라보면 소풀 위에 산딸기를 얹어 오시던 아버지의 손이 떠오른다. 거칠고 굳은 손이었지만, 그 손은 누구보다 따뜻했다.

아버지는 평생 흙에서 농사를 지으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정작 온 힘을 다해 키워 낸 것은 육남매였다. 힘들 때마다 나를 일으켜 세운 것은 거창한 가르침이 아니었다. 푸른 소풀 위에 놓여 있던 작고 붉은 산딸기였다. 그것은 오래전 아버지가 내 마음속에 심어 놓은 사랑이었고,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시들지 않는 나의 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