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의 옛 영양은 지금보다 느리게 움직이는 고장이었다. 길에는 자동차보다 걸어 다니는 사람이 많았고, 이웃 마을을 오가는 일도 지금처럼 쉽지 않았다. 장날이 되면 사람들은 농사지은 것을 내다 팔고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장터로 모였다. 그러나 장터는 물건만 사고파는 곳이 아니었다. 서로 안부를 묻고 집안 소식을 나누며 이웃의 형편을 살피는 만남의 자리이기도 했다.
마을에서는 한 집의 일이 곧 이웃의 일이었다. 농번기에는 서로 품을 나누었고, 집안에 큰일이 생기면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이 찾아와 손을 보탰다. 살림은 넉넉하지 않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는 가까웠다. 해가 지면 마을은 일찍 고요해졌고, 사람들은 계절의 흐름에 맞추어 일하고 쉬었다.
그 시절의 영양에는 불편한 것이 많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서로의 손과 정으로 그 불편을 채우며 살아갔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영양의 길과 집, 사람들의 생활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2. 달라진 오늘의 풍경
오늘의 영양은 옛날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편리해졌다. 좁고 구불구불하던 길은 넓고 반듯해졌고, 먼 곳을 오가는 시간도 한결 짧아졌다. 예전에는 큰마음을 먹고 나서야 할 수 있었던 일도 이제는 자동차와 전화, 인터넷을 이용해 손쉽게 해결한다. 생활이 편리해진 만큼 사람들의 하루도 훨씬 빠르게 움직인다.
읍내와 마을의 모습도 달라졌다. 오래된 집과 가게가 사라진 자리에는 새로운 건물과 시설이 들어섰다. 농사에는 기계가 널리 쓰이면서 여러 사람이 달라붙어야 했던 일을 혼자서도 해낼 수 있게 되었다. 밤이면 일찍 어두워지던 거리에는 불빛이 늘었고, 바깥세상의 소식도 산을 넘어 곧바로 들어온다.
이러한 변화는 영양 사람들의 수고를 덜어 주고 생활을 편리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얻은 것이 많은 만큼 사라지거나 희미해진 것도 있다. 마을길에서 우연히 만나 오래 이야기를 나누던 일은 줄었고, 손꼽아 장날을 기다리던 설렘도 예전 같지 않다.
3. 변화 속에서 아쉬운 것
영양의 생활은 편리해졌지만, 마음 한편에는 아쉬움도 남는다. 예전에는 마을 어귀나 장터에서 사람을 만나면 걸음을 멈추고 안부부터 물었다. 어느 집에 무슨 일이 있는지 서로 알고 지냈으며,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이웃들이 먼저 찾아와 손을 보탰다. 특별히 부탁하지 않아도 서로의 형편을 살피던 것이 그 시절의 인심이었다.
농사일의 풍경도 많이 달라졌다. 예전에는 모내기나 가을걷이처럼 손이 많이 필요한 때면 여러 집이 품을 나누었다. 고된 일이었지만 함께 일하고 함께 밥을 먹으며 웃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기계가 사람의 수고를 덜어 주지만, 들판에서 여러 사람이 어울려 일하던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영양의 인구가 자꾸 줄어드는 일이다. 일자리와 배움의 기회를 찾아 젊은 사람들이 도시로 떠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정도 줄어들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던 골목은 조용해졌고, 학생이 줄어든 학교와 손님이 뜸해진 가게도 늘어났다. 마을에 남은 사람들은 점점 나이가 들어 가지만, 그 뒤를 이어 농토와 집을 지킬 사람은 많지 않다.
인구가 줄어든다는 것은 단순히 사람의 숫자가 적어지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한 사람이 떠날 때마다 그 사람이 맡았던 일과 이웃 관계, 오랫동안 이어 온 생활의 모습도 함께 사라진다. 가게가 문을 닫고 마을 행사가 줄어들며, 빈집과 묵은 밭이 늘어나는 모습을 보면 풍경만 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이어지던 삶까지 희미해지는 듯해 안타깝다. 그래서 이제는 영양의 옛 모습을 추억하는 데 머물지 않고, 앞으로 무엇을 지키고 이어 갈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
4. 앞으로 남기고 싶은 영양
인구가 줄고 마을의 활기가 예전 같지 않은 모습을 바라보면, 앞으로 영양에 무엇을 남겨야 할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옛날의 모든 모습을 그대로 되돌릴 수는 없다. 그렇다고 편리함만 좇다가 영양이 오래 간직해 온 삶의 방식과 따뜻한 마음까지 잃어서는 안 된다.
영양의 산과 들, 오래된 마을길과 장터에는 이곳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시간이 쌓여 있다. 눈에 보이는 풍경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생활의 지혜도 기록해 두어야 한다. 누군가 기억하고 글로 남겨야 다음 세대도 영양이 어떤 곳이었으며, 사람들이 어떻게 서로 의지하며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젊은 사람들이 영양을 떠나지 않고도 일하며 가정을 꾸릴 수 있었으면 한다. 떠났던 사람들이 다시 돌아오고, 새로운 사람들이 찾아와 삶의 터전을 마련한다면 조용해진 마을에도 다시 활기가 생길 것이다. 오래 살아온 사람들의 경험과 새로 정착한 사람들의 생각이 어우러질 때 영양의 미래도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영양의 풍경은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그러나 사람을 귀하게 여기고 이웃과 정을 나누며 고향을 아끼는 마음만은 사라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옛 영양의 좋은 기억을 간직하면서도 새로운 삶과 희망이 이어지는 곳, 그것이 내가 앞으로 남기고 싶은 영양의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