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두 사람 프롤로그 돌아가는 길 제1장 인공지능을 만나기 전의 생각 제2장 인공지능에 대해 처음 배우게 된 순간 제3장 도구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손 제4장 그래도 마지막 선택은 사람의 몫 에필로그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
서문 두 사람
나
서울에서 공부하던 중 인공지능을 처음 배웠다. 새로운 기술이 열어 줄 가능성에 마음이 끌리면서도, 그것이 사람의 자리와 생각을 밀어내지는 않을까 두려워한다. 공부를 마친 뒤 영양으로 내려온 나는 서울에서 배운 기술을 이곳 사람들의 삶과 이어 보려 한다. 그러나 인공지능이 사람의 경험을 살리는 도구가 될지, 오히려 사람의 목소리를 지우게 될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
수진
서울의 인공지능 교육장에서 만난 동료다. 낯선 것을 두려워하기보다 직접 해 보고 판단하는 사람이다. 내가 인공지능의 답 앞에서 머뭇거릴 때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를 대신 정해 주지 않고, 무엇을 스스로 살펴야 하는지를 묻는다. 내가 영양으로 돌아간 뒤에도 글을 주고받으며 내 생각을 비추어 주는 거울 같은 사람이다.
한 사람은 새로운 기술을 배워 고향으로 돌아간다. 다른 한 사람은 서울에 남아 멀리서 그의 문장을 읽는다. 두 사람이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 사이에서, 인공지능은 비로소 사람의 삶을 향해 천천히 방향을 바꾸기 시작한다.
프롤로그 돌아가는 길
서울을 떠나는 날, 나는 창가 자리에 앉았다.
차가 도시의 경계를 벗어나자 창밖 풍경이 서서히 낮아졌다. 빽빽하던 건물은 하나둘 사라지고, 그 자리를 들과 산이 채웠다. 무릎 위에는 서울에서 인공지능을 배우며 적어 둔 공책이 놓여 있었다. 첫 장에는 수업 첫날 들었던 말이 적혀 있었다.
‘인공지능은 사람을 대신하는 존재가 아니라, 사람의 일을 돕는 도구다.’
나는 그 문장을 여러 번 읽었다. 서울에서는 그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다. 그러나 영양에서도 정말 그럴지는 알 수 없었다. 오랫동안 땅을 일구어 온 손, 장터에서 사람의 얼굴만 보고도 마음을 헤아리던 눈, 책에는 적히지 않은 삶의 지혜를 인공지능이 이해할 수 있을까.
휴대전화가 짧게 울렸다. 수진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영양에 가서 가장 먼저 무엇을 해 볼 거예요?”
나는 한동안 답을 적지 못했다. 인공지능으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배웠지만, 무엇을 해야 하는지는 아직 정하지 못했다. 화면에는 빈 답장 칸이 떠 있었다.
차창 너머로 산줄기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오래 떠나 있었지만 단번에 알아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나는 공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에서 배운 것은 기술이었지만, 그 기술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영양에서 다시 배워야 할 것 같았다.
나는 수진에게 짧게 답했다.
“먼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해요.”
메시지를 보내고 나자 마음속에 남아 있던 두려움이 조금 가라앉았다. 내가 가져가는 것은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기계가 아니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받아 적을 빈 입력창 하나와, 그 앞에서 쉽게 판단하지 않겠다는 마음뿐이었다.
산굽이를 돌아 영양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알 수 없는 예감에 사로잡혔다.
어쩌면 진짜 공부는 이제부터 시작인지도 몰랐다.
제1장 인공지능을 만나기 전의 생각
“인공지능이 사람 대신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린대요.”
서울에서 공부하던 어느 날이었다. 수업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내려가는 길에 누군가 무심코 꺼낸 말이 한동안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인공지능이라는 이름은 뉴스와 텔레비전에서 여러 번 들어 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거대한 회사나 이름 모를 연구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기술이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나와 직접 관계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서울에서 공부하며 만나는 사람마다 인공지능 이야기를 꺼냈다. 누군가는 보고서를 쓰는 데 도움을 받았다고 했고, 누군가는 외국어를 배우거나 그림을 만드는 데 쓴다고 했다.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있으면 인공지능은 먼 미래가 아니라 이미 일상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그럴수록 마음은 복잡해졌다.
‘인공지능이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하게 되면 사람의 자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인공지능은 지치지도 않고 잊어버리지도 않으며, 사람이 몇 시간 걸려 할 일을 순식간에 해낸다고 했다. 그런 존재가 점점 더 많은 일을 맡게 되면 오랫동안 쌓아 온 사람의 경험과 손끝의 감각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어느 날 갑자기 필요 없는 것이 되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세상이 편리해지는 만큼 사람 사이의 온기가 줄어들 것 같다는 걱정도 들었다. 사람에게 물어보던 일을 기계에 묻고, 서로 마주 앉아 의논하던 일을 화면 앞에서 해결한다면 대화할 이유도 줄어들지 모른다. 인공지능이 삶 속으로 깊이 들어올수록 사람은 오히려 외로워지는 것이 아닐까. 잘 알지 못하는 것일수록 그 그림자는 더 크고 짙게 보였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영양의 풍경이 떠올랐다. 서울에서는 새로운 기술과 정보가 빠르게 퍼졌다. 지하철 안에서도, 강의실에서도, 골목의 작은 찻집에서도 사람들은 새로 나온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러나 내가 돌아갈 영양에서도 그 변화가 같은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알 수 없었다. 인공지능이 지역의 삶에 실제로 도움이 될지, 아니면 도시 사람들만의 도구로 남을지도 궁금했다.
두려움의 한편에는 기대도 있었다.
나는 가끔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글로 옮기려다가 첫 문장 앞에서 멈추곤 했다. 하고 싶은 말은 분명히 있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어렵게 문장을 써 놓고도 생각한 뜻과 달라 지운 적이 많았다. 생각은 많았지만 그것을 차례대로 정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럴 때 인공지능이 내 말을 듣고 생각을 정리해 줄 수 있다면 어떨까. 내가 몰랐던 것을 알려 주고, 복잡한 내용을 풀어 주며, 머릿속에만 있던 생각이 문장이 되도록 거들어 준다면 혼자서는 엄두를 내지 못했던 일에도 도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모르는 것을 몇 번이나 되물어도 싫은 내색 없이 다시 설명해 주는 상대가 생긴다고 생각하니 호기심도 일었다.
더 나아가 영양으로 돌아간 뒤 내가 배운 것을 사람들과 나눌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곳에는 오랜 세월 자기 일을 해 온 사람들이 있었다. 밭의 흙만 만져도 올해 농사의 기운을 짐작하는 사람, 장날의 표정만 보고도 마을의 형편을 읽는 사람, 한 번도 책을 쓰지는 않았지만 한 권의 책보다 깊은 이야기를 품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경험이 글이나 그림으로 남을 수 있다면, 인공지능은 서울에서만 빠르게 달리는 기술이 아니라 지역의 삶을 기록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늘 같은 걱정이 남았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내가 과연 잘 쓸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물어야 하는지도 몰랐다. 말을 잘못 건네면 엉뚱한 답이 돌아올 것 같았고, 버튼 하나를 잘못 누르면 무슨 문제가 생길 것만 같았다. 컴퓨터에 익숙한 사람들은 금세 배울 텐데, 나만 출발선에 남겨질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인공지능을 아직 제대로 만나기도 전이었지만 내 마음속에서는 두려움과 기대가 벌써 팽팽히 맞서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멀리하라고 했고, 다른 한쪽에서는 한번 다가가 보라고 했다.
나는 그 두 마음 사이에 서 있었다. 문밖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했지만 선뜻 문고리를 잡지 못했다.
그 문고리에 실제로 손을 대게 된 것은 서울에서 인공지능을 배우던 날이었다.
제2장 인공지능에 대해 처음 배우게 된 순간
서울의 교육장에는 긴 책상 위로 컴퓨터가 줄지어 놓여 있었다. 자리에 앉았지만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화면만 바라보고 있었다. 주변에서는 의자가 움직이는 소리와 자판을 두드리는 소리가 이어졌다. 아직 수업도 시작하지 않았는데 나만 뒤처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때 옆자리에 앉은 여자가 먼저 말을 건넸다.
“처음이세요?”
그녀의 이름은 수진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을 배우러 왔다고 했다. 다만 수진은 낯선 화면 앞에서도 주저하기보다 이것저것 눌러 보며 호기심을 드러냈다.
“저도 잘 몰라요. 그래도 모르면 물어보면 되겠죠.”
수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듯 웃었다. 그 한마디를 듣자 굳어 있던 마음이 조금 풀렸다. 잘 모르기 때문에 이 자리에 왔다는 당연한 사실을, 나는 그제야 받아들였다.
수업이 시작되자 강사가 말했다.
“인공지능은 정답을 꺼내 주는 기계가 아닙니다. 사람의 말을 바탕으로 알맞은 답을 만들어 내는 도구입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인공지능’이라는 말을 다시 한번 되뇌었다. 전에도 수없이 들었던 말인데 그날은 다르게 다가왔다. 전에는 뉴스 속에 떠다니는 낯선 기술의 이름이었다면, 이제는 내가 직접 알아보아야 할 대상이 되어 눈앞에 놓여 있었다.
인공지능은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사람의 질문에 답한다고 했다. 사람처럼 세상을 살아 본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쓰는 말을 이해한 듯 대답하고 글과 그림도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기계가 어떻게 사람의 말을 알아들을까?’
궁금증이 커지는 만큼 의심도 생겼다. 인공지능이 내놓는 답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까. 틀린 내용을 그럴듯하게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무엇이든 척척 해낸다는 설명을 들을수록 오히려 사람의 판단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맡겼다가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쉬는 시간이 되자 나는 수진에게 조용히 물었다.
“이런 답을 정말 믿어도 되는 걸까요?”
수진은 잠시 화면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그대로 믿으면 안 되겠죠. 사람에게 들은 말도 따져 보잖아요. 이것도 우리가 확인하면서 쓰면 되지 않을까요?”
짧은 말이었지만 마음에 오래 남았다. 무조건 믿거나 무조건 두려워할 필요는 없었다. 필요한 도움은 받되 마지막에는 내가 살펴보고 판단하면 되는 일이었다.
수업이 다시 시작되었다. 강사는 인공지능을 쓰기 위해 특별한 기술부터 배울 필요는 없다고 했다. 평소에 쓰는 말로 묻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시 말하며, 원하는 답에 가까워질 때까지 대화를 이어 가면 된다고 했다.
그 말을 듣자 가슴 한구석에 걸려 있던 걱정이 조금 느슨해졌다.
‘그렇다면 나도 한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인공지능을 잘 쓰려면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고 어려운 용어를 많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먼저 필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알고 싶은지, 무엇을 만들고 싶은지를 말하는 일이었다.
내가 살아오며 쌓은 경험과 생각도 인공지능을 쓰는 밑바탕이 될 수 있었다. 인공지능이 아무리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어도 내가 겪은 일과 마음까지 저절로 알 수는 없었다. 내가 걸어온 길, 만났던 사람, 몸으로 배운 일은 내가 들려주어야 했다.
그 사실을 깨닫자 인공지능 앞에서 작아질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공지능이 가진 지식이 있다면 나에게는 내가 살아온 시간이 있었다. 둘은 서로 다른 것이었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함부로 지울 수 있는 관계도 아니었다.
한 번의 배움으로 모든 두려움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낯선 말이 있었고 잘못 사용할까 하는 걱정도 남아 있었다. 그래도 인공지능은 더 이상 굳게 닫힌 문처럼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디를 잡아야 하는지는 알 것 같았다.
그날 수업이 끝날 무렵 강사는 직접 질문을 적어 보라고 했다. 수진이 먼저 자판을 두드리다가 내 쪽을 바라보았다.
“이제 우리도 한번 말을 걸어 봐요.”
내 앞의 화면에는 빈 입력창 하나가 떠 있었다.
제3장 도구가 아니라 함께 생각하는 손
나는 한동안 손을 움직이지 못했다. 설명을 들을 때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막상 직접 말을 건네려니 무슨 말부터 써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사람과 마주 앉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데 괜히 첫인사를 잘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쓰면 알아들을까?’
몇 글자를 적었다가 지웠다. 질문이 너무 짧은 것 같아 말을 덧붙였고, 다시 읽어 보니 두서가 없어 보여 또 지웠다. 인공지능을 잘 쓰려면 질문부터 훌륭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붙들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수진이 말했다.
“처음부터 잘 쓰려고 하지 말고 그냥 평소처럼 말해 봐요.”
나는 한참을 망설인 끝에 생각나는 대로 적었다.
“서울에서 인공지능을 배우고 영양으로 돌아가려는데, 내가 배운 것을 그곳에서 어떻게 쓸 수 있을까?”
잠시 뒤 화면에 답이 나타났다.
인공지능은 지역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농사와 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정리하며, 주민들이 글과 그림을 만드는 일을 도울 수 있다고 했다. 예상보다 구체적인 답이었다. 그중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내용도 있었다.
그러나 모든 답이 마음에 든 것은 아니었다. 영양을 그저 사람이 적고 불편한 지역으로만 설명한 문장이 눈에 걸렸다. 서울과 비교해 부족한 곳으로 바라보는 듯한 표현도 있었다.
나는 그 문장을 가리키며 수진에게 말했다.
“영양을 잘 모르니까 이렇게 쓰는 것 같아요.”
수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영양이 어떤 곳인지 직접 알려 줘야겠네요.”
나는 다시 자판을 두드렸다.
“영양은 부족하기만 한 곳이 아니야. 오랫동안 자기 일을 해 온 사람들이 있고, 아직 글로 기록되지 않은 경험이 많은 곳이야. 그분들의 이야기를 남기는 데 인공지능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 다시 알려 줘.”
새로운 답이 나타났다. 이번에는 전보다 내 생각에 가까웠다. 인공지능은 지역 주민들의 말을 정리하고, 오래된 생활 기술과 마을의 기억을 글로 남기며, 사람들이 자신의 경험을 직접 표현하도록 도울 수 있다고 했다.
그 순간 나는 인공지능을 잘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려운 명령을 외우는 일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것을 들려주고, 잘못된 부분을 짚어 주며, 원하는 방향을 함께 찾아가는 일이었다.
인공지능이 내게 답을 주고 있었지만 그 답을 고치는 동안 내 생각도 선명해졌다. 무엇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말하려면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영양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그곳에 돌아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도 스스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구나.’
인공지능이 대신 생각해 주는 줄 알았는데, 그 앞에서 나는 오히려 더 깊이 생각하고 있었다. 혼자였다면 막연한 기대에 그쳤을 일이 문장으로 나타나자 내가 가려는 길도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서울에서 공부를 마친 뒤 나는 영양으로 내려왔다. 창밖으로 높은 건물이 사라지고 산과 들이 가까워질수록 서울에서 배운 인공지능이 이곳에서도 쓸모가 있을지 다시 궁금해졌다.
영양에 도착한 뒤 처음 인공지능을 켰을 때는 서울의 교육장에서 보았던 것과 같은 빈 입력창이 나타났다. 그러나 그 화면은 더 이상 나를 시험하는 자리가 아니었다. 아직 문장이 되지 못한 생각을 꺼내 놓고 함께 모양을 찾아가는 작은 작업대처럼 보였다.
나는 영양의 계절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적었다. 인공지능은 그것을 글의 형태로 정리해 주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표현은 다시 고쳐 달라고 했고 빠진 장면은 덧붙였다. 처음에는 내가 도움을 받는 일이라고만 생각했지만, 글이 만들어질수록 다른 가능성도 보였다.
누군가는 평생 농사지으며 터득한 지혜를 남길 수 있을 것이다. 누군가는 장사를 하며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쓸 수 있을 것이다. 또 누군가는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기억을 시나 그림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술을 배우지 못해서 이야기가 없는 것이 아니었다. 이야기하는 방법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인공지능은 사람의 경험을 대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경험이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도록 손을 빌려줄 수는 있었다.
나는 서울에서 함께 공부했던 수진에게 완성된 글을 보냈다. 잠시 뒤 답장이 왔다.
“글은 참 매끄러워요. 그런데 정말 당신이 하고 싶은 말도 모두 들어 있나요?”
나는 화면을 다시 바라보았다.
문장은 훌륭했지만, 이상하게도 어느 대목에서는 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제4장 그래도 마지막 선택은 사람의 몫
처음부터 다시 글을 읽어 보았다. 문장들은 막힘없이 이어졌고 얼핏 보면 손볼 곳이 없어 보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글을 쓰기 위해 한참을 고민했을 것이다.
그러나 수진의 말을 떠올리며 천천히 읽자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분명 그럴듯한 말이었다. 하지만 내가 영양으로 돌아오며 품었던 마음과 조금씩 어긋나 있었다. 표현은 반듯했지만 내 목소리는 희미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긴 사람들의 경험은 짧게 지나갔고, 기술의 편리함만 지나치게 강조되어 있었다.
‘문장은 좋은데 왜 내 글 같지 않을까?’
그제야 알았다. 인공지능은 글을 써 줄 수 있지만, 그 글이 나를 제대로 담고 있는지까지 판단해 주지는 못한다는 것을.
나는 문장 하나를 지우고 그 자리에 내 말을 적었다. 조금 투박했지만 그 편이 마음에 들었다. 또 다른 문장은 인공지능에게 다시 고쳐 달라고 부탁했다.
“이 글에서는 인공지능이 대단하다는 말보다, 영양 사람들의 경험이 소중하다는 뜻이 더 잘 드러났으면 좋겠어.”
새로운 문장이 나타났다. 전보다 내 생각에 가까웠다. 그래도 그대로 두지는 않았다. 단어 하나를 바꾸고 필요 없는 문장을 덜어 냈다. 영양으로 돌아오던 길에 보았던 산과 들의 모습을 보탰고, 서울에서 수진과 나눈 대화도 다시 떠올려 적었다.
그렇게 몇 차례 손을 보자 비로소 내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제 모습을 드러냈다.
인공지능을 처음 접했을 때는 무엇이든 알아서 해 주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질문만 하면 정답을 주고, 부탁만 하면 완성된 결과를 내놓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직접 사용해 보니 인공지능의 답은 끝이 아니라 시작에 가까웠다.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버릴지, 어디를 믿고 어디를 다시 확인할지는 결국 내가 정해야 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인공지능은 내가 서울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마음으로 영양에 돌아왔는지 알지 못한다. 영양의 겨울바람이 얼마나 매서운지, 산과 들의 빛이 계절마다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직접 본 적이 없다. 이곳 사람들이 얼마나 오랫동안 자기 자리를 지키며 살아왔는지도 내가 들려주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인공지능은 수많은 문장을 만들 수 있지만, 그중 어느 문장이 내 삶에 맞는지는 내가 판단해야 했다.
사실을 확인하는 일도 사람의 몫이었다. 인공지능은 때때로 틀린 내용을 확신에 찬 말투로 들려줄 수 있다고 했다. 문장이 자연스럽다고 내용까지 모두 맞는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이름과 날짜, 숫자는 다시 살펴야 했다. 다른 사람의 삶을 글로 옮길 때는 그 사람의 뜻과 마음도 헤아려야 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을 믿으면 안 되는 것일까?’
나는 잠시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서울의 교육장에서 수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사람에게 들은 말도 따져 보잖아요.”
무조건 믿는 것과 제대로 살펴서 쓰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자동차가 빠르게 달릴 수 있다고 목적지를 대신 정해 주지는 않는다. 방향을 잡고, 멈춰야 할 때 멈추며, 끝까지 운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인공지능도 마찬가지였다. 힘은 빌릴 수 있지만 방향까지 맡길 수는 없었다.
그러자 처음의 두려움도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할 것인가만 걱정하기보다 사람이 인공지능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지 생각해야 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판단을 모두 넘겨주면 사람의 생각은 점점 흐려질 수 있다. 반대로 자신의 경험과 기준을 가지고 사용한다면 미처 꺼내지 못한 생각을 세상 밖으로 내보내는 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나는 인공지능 앞에서 작아질 필요가 없었다. 인공지능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다면, 나에게는 서울에서 배우고 영양으로 돌아오기까지 지나온 시간이 있었다. 이곳 사람들에게도 저마다 평생 몸으로 익힌 지혜와 사람을 대하는 마음이 있었다. 그것은 어느 기계도 대신 살아 줄 수 없는 것이었다.
화면 속의 글을 다시 읽었다. 처음 나타났던 글과는 꽤 달라져 있었다. 인공지능이 만든 문장 위에 내 경험이 더해졌고, 내 판단으로 덜어 낸 자리에는 내 목소리가 남았다.
나는 마지막 문장 끝에 마침표를 찍은 뒤 수진에게 글을 다시 보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답장이 도착했다.
“이번에는 영양의 풍경도 보이고, 당신 목소리도 들려요.”
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높은 건물 사이에서는 볼 수 없었던 산자락 위로 저녁빛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인공지능은 나를 대신하는 주인이 아니었다. 내가 가려는 길을 조금 더 잘 볼 수 있도록 등불을 들어 주는 도구였다. 어디로 갈지 정하고, 그 길이 옳은지 살피며,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는 사람은 여전히 나였다.
처음의 두려움은 책임으로 바뀌었다. 막연했던 기대는 작은 자신감이 되었다. 서울에서 배운 인공지능은 영양에 내려온 뒤에야 비로소 내가 살아온 경험과 만났다.
나는 이제 인공지능에게 무엇이든 맡기려고 하지 않는다. 다만 내가 가진 생각과 경험을 더 잘 펼치고, 이곳 사람들의 귀한 이야기가 사라지지 않도록 그 손을 빌리려 한다.
함께 생각하되 판단은 놓지 않고, 도움을 받되 사람의 목소리를 잃지 않으면서.
그것이 서울에서 인공지능을 배우고 영양으로 돌아온 내가 찾은 가장 중요한 답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에필로그 아직 쓰이지 않은 문장
며칠 뒤 늦은 오후였다.
나는 작은 책상 앞에 앉아 새 문서를 열어 두고 있었다. 화면에는 아무 글도 없었다. 처음 인공지능을 배울 때 나를 막막하게 했던 바로 그 빈 입력창이었다. 그러나 이제 그 빈자리는 두렵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이 아니라, 아직 누군가의 말이 도착하지 않은 자리였다.
창밖 산자락 위로 저녁빛이 천천히 내려앉고 있었다. 그 빛 아래에는 아직 글로 쓰이지 않은 삶이 많았다. 평생 밭을 일군 사람이 계절을 읽는 법, 작은 가게를 지키며 마을 사람들의 사정을 헤아린 이야기, 누군가에게 끝내 전하지 못한 고마움도 있었다.
그 이야기들이 인공지능보다 뒤처진 것은 아니었다. 아직 세상 밖으로 나올 방법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나는 서울에서 인공지능을 배워 왔다. 그러나 영양에 내려온 뒤에야 무엇을 위해 써야 하는지를 조금씩 배우기 시작했다. 그것은 사람의 삶을 대신 말하는 일이 아니었다. 말하고 싶지만 첫 문장을 찾지 못한 사람 곁에서, 그 사람의 목소리가 나올 때까지 조용히 손을 빌려주는 일이었다.
그때 문밖에서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공책 한 권을 품에 안은 채 들어왔다. 오래 망설이다 찾아온 사람처럼 문턱에 선 그녀는 방 안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화면에는 작은 커서 하나가 꺼지지 않고 깜박이고 있었다.
“저도 이런 걸 배울 수 있을까요?”
그 질문은 서울의 교육장에서 내가 마음속으로 수없이 되뇌었던 말과 닮아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맞은편 의자를 빼 주었다.
“물론입니다. 무엇을 만들고 싶으신가요?”
여자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품에 안고 있던 공책을 천천히 펼쳤다. 빛바랜 첫 장에는 오래전에 적은 듯한 문장이 한 줄 남아 있었다. 연필 자국은 희미했지만 여러 번 지우고 다시 쓴 흔적은 또렷했다.
나는 그 문장을 먼저 읽지 않았다. 그녀가 직접 들려주기를 기다렸다.
방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예전의 나였다면 그 침묵을 견디지 못하고 무언가를 먼저 물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알았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나오기까지는 그 사람만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공지능이 아무리 빠르게 문장을 만들더라도, 사람의 마음까지 서두르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여자는 공책 위에 손을 얹었다. 오래된 기억의 문을 더듬는 듯 손끝이 가만히 움직였다.
“이건 아주 오래전 이야기예요.”
그녀의 목소리는 작았지만 분명했다.
나는 두 손을 자판 위에 올렸다가 다시 내려놓았다. 아직은 받아 적을 때가 아니었다. 먼저 들어야 했다. 어떤 말은 글이 되기 전에 충분히 사람의 목소리로 머물러야 했다.
여자는 창밖의 산을 한번 바라본 뒤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 순간 화면의 커서가 다시 한번 깜박였다. 마치 자신도 기다릴 줄 안다는 듯이.
나는 문득 서울에서 영양으로 돌아오던 날을 떠올렸다. 그때 나는 모든 답을 알고 있는 기계를 가져오는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내 앞에 있는 것은 답을 서두르지 않도록 가르쳐 주는 한 사람과, 그 사람의 말을 기다리는 빈 화면이었다.
산너머 깊은 마을에서 인공지능은 비로소 사람의 속도를 배우고 있었다.
여자의 이야기가 어디로 이어질지는 아직 알 수 없었다. 그 공책에 누구의 이름이 적혀 있는지, 어떤 기쁨과 후회가 오래 접힌 채 남아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나는 그녀의 첫마디가 사라지지 않도록 곁에 있을 생각이었다.
창밖에서는 마지막 햇빛이 산등성이 너머로 천천히 넘어가고 있었다. 방 안에는 여자의 목소리가 이어졌고, 빈 입력창은 아직 첫 문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그날 우리가 쓰게 될 이야기는 인공지능이 먼저 아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것은 오직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들려줄 때에만 시작될 수 있는 이야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