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을 넘어서니 내가 살아온 세월만큼이나 고향 영양의 앞날을 자주 생각하게 된다. 젊은이들은 일자리와 배움의 기회를 찾아 도시로 떠나고,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던 마을에는 빈집이 하나둘 늘어 간다. 남아 있는 주민들은 해마다 나이가 들어 가고, 지방소멸이라는 말은 이제 먼 미래의 걱정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 되었다.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이 활력을 잃고 언젠가는 이름만 남은 곳이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다. 이러한 안타까움은 예순 이후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시 묻게 한다. 남은 세월을 나 자신만을 위해 보내지 않고, 고향의 내일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는 마음, 그것이 이 글을 쓰게 된 까닭이다.
둘째, 내 삶의 뿌리 영양
영양은 내게 지도 위에 표시된 하나의 지명이 아니다. 어린 시절의 숨결과 부모님의 땀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삶의 뿌리다. 산과 들을 뛰놀던 기억, 골짜기를 따라 흐르던 물소리, 흙냄새와 풀벌레 소리는 세월이 흐른 지금도 마음속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고향이 아름답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서 고추농사와 담배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는 일은 고되고 힘겨웠다. 그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부모님은 자식만큼은 제대로 가르쳐야 한다는 마음으로 당신들의 고단함을 묵묵히 견디셨다. 농사일에 지친 몸으로도 자식의 앞날을 먼저 걱정하셨고, 자신들이 누리지 못한 배움의 길을 자식에게 열어 주기 위해 온갖 수고와 희생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그 땀과 사랑이 있었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래서 영양은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그리운 고향인 동시에, 내가 받은 은혜를 되돌려주어야 할 마음의 자리이기도 하다.
셋째, 공직의 경험을 고향에 돌려주는 삶
나는 평생을 공직에 몸담아 일하다가 퇴임했다. 공직 생활을 통해 행정이 움직이는 원리와 지역이 발전해 가는 과정을 배웠고, 여러 분야의 사람들과 만나며 소중한 인연도 쌓았다. 이제 그 경험과 인적 네트워크를 지나간 경력으로만 남겨 두고 싶지는 않다. 지역에 필요한 일을 찾아 해결의 실마리를 보태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 주며, 영양의 농산물과 문화와 자연이 더 널리 알려지도록 힘을 보태고 싶다. 청년들이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을 함께 고민하고, 다시 돌아오거나 새롭게 정착하려는 이들에게 작은 기회라도 마련해 주고 싶다. 퇴임은 모든 역할에서 물러나는 끝이 아니라, 공직에서 얻은 경험과 인연을 고향에 돌려주는 새로운 출발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가진 경험이 영양의 어려움을 푸는 데 조금이라도 쓰일 수 있다면, 그것은 평생 공직자로 살아온 사람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책무이자 보람일 것이다.
넷째, 고향의 내일을 위한 삶
돌아보면 고향 영양은 내게 참으로 많은 것을 주었다. 산과 들은 어린 시절의 꿈을 키워 주었고, 부모님의 땀과 희생은 내가 세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밑거름이 되었다. 고향 사람들의 따뜻한 정과 믿음 또한 내 삶을 지탱해 준 든든한 힘이었다. 이제는 내가 받은 것을 고향에 돌려줄 차례다. 남은 삶을 고향 주민들과 함께하며, 그들의 기쁨과 어려움에 귀 기울이고, 영양이 다시 활력을 되찾는 데 힘을 보태고 싶다. 다음 세대가 이곳에서도 꿈을 꾸고 희망을 키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내가 가진 경험과 인연을 기꺼이 내어놓고 싶다. 예순 이후의 삶은 저무는 시간이 아니다. 살아온 세월의 열매를 이웃과 나누고, 나를 길러 준 고향의 미래를 위해 다시 씨앗을 뿌리는 시간이다. 언젠가 내 삶을 돌아보는 날, “나는 영양에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 사랑을 고향의 내일로 돌려주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내 삶은 충분히 값지고 행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