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간트가 던진 작은 공

폭간트의 영양 영상이 50만 조회를 향해 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날, 저는 그 댓글창을 끝까지 내려 읽다가 한참을 일어서지 못했습니다.

“"지역은 어떻게 다시 살아날 수 있을까?"”—

영양에 사는 사람이 가장 자주 듣지만 가장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그 영상 한가운데 놓여 있었습니다. 폭간트가 쏘아올린 그 작은 공을, 저희는 영양에서 한 번 받아보려 합니다. 받아서 어디로 다시 보낼지를, 함께 정해보려 합니다.

이 글은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영양에서 받는 사람의 입장에서 적은 노트입니다. 결론부터 적자면, 영양이 가장 잘 받을 수 있는 자리에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가장 늦게 닿고, 가장 단절돼 있고, 가장 청정한 자리이기 때문에.

영양은 처음부터 단절의 마을이었다

영양은 처음부터 단절을 안고 출발한 고장이었습니다.

조선 후기, 갈암 이현일(1627–1704)이 영양군 입암면 병옥리로 거처를 옮긴 것은 그가 마흔 살이 되던 해였습니다. 그는 학봉 김성일에서 이어지는 퇴계학통의 한 매듭을 이 산골에서 묶었고, 영남학파의 큰 어른이 되었습니다. 그의 외증손 대산 이상정을 거쳐 정재 류치명에 이르는 학통은, 영양의 길이 멀고 가팔랐기에 오히려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280년이 흐른 1920년, 일월면 주실마을에서 청록파 시인 조지훈이 태어났습니다. 그보다 19년 앞서, 영양읍 감천마을에서는 시인 오일도가 태어났고, 그는 훗날 한국 최초의 순수시 전문지 「시원(詩苑)」을 창간합니다. 그리고 다시 한 세대가 지난 1948년, 두들마을의 재령 이씨 종택에서 소설가 이문열이 태어났습니다.

면적 30제곱킬로미터 안에서, 한국 현대문학의 굵직한 이름 셋이 잇따라 나왔습니다. 그 이전 400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한 학파의 매듭이 묶입니다. 사람들은 영양을 문향(文鄕)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정확하게는 단절의 향(鄕)이라 불러야 합니다. 길이 끊겼기에 글이 깊었던 자리. 글이 깊었기에 길이 끊긴 것이 결핍이 아니라 조건이 된 자리.

단절은 결핍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이다

단절이 결핍이 아니라 조건이라는 말을, 저는 자주 합니다. 풀어 적으면 이렇습니다.

어떤 생각도 다른 생각과 부딪쳐야 자기 모양을 잡습니다. 그러려면 잠시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 떨어져 있는 자리에서야, 자기 안의 생각이 자기에게 말을 걸기 시작합니다. 단절은 그 말이 시작되는 조건입니다.

미국의 한 학자가 「딥 워크(Deep Work)」라는 책에서 한 줄로 적은 적이 있습니다. ‘좋은 작업의 결과물은 들인 시간과 집중도의 곱이다.’ 알림이 끊임없이 끼어드는 자리에서는, 그 집중도라는 변수가 0에 가까워집니다. 곱은 0입니다. 자리를 바꿔야 합니다. 알림이 가장 늦게 닿는 자리로, 소음이 가장 약한 자리로.

영양은 우연히 그런 자리입니다. 우연히가 아니라, 400년 동안 그런 자리였습니다.

물론 단절 하나만으로 학자와 문인이 자동으로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가문과 향교, 글을 끝까지 다듬어 책으로 묶는 출판 풍토, 같이 읽어줄 학우(學友)가 늘 가까이 있는 공동체 — 이 모든 것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의 밑바닥엔, 단절이 깔려 있었습니다. 단절이 사라지면 나머지 조건들도 함께 무너졌을 자리입니다.

도시에서는 할 수 없는 한 수가, 여기서는 가능합니다.

우리는 왜 이걸 실현 못 했나

여기까지 읽으신 분들 중 일부는 이미 비슷한 말을 어디선가 들으셨을 것입니다.

디지털 디톡스, 슬로 라이프, 힐링 마을, 농촌 유학, 사색의 자리.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비슷한 단어들을 돌아가며 꺼냈고, 그때마다 잠깐의 바람이 일었다가 가라앉았습니다. 영양을 비롯한 여러 작은 마을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 반복을 한 단어로 정리하자면 — 관성이었습니다.

관성의 정체는 두 겹입니다.

바깥의 관성은 분명합니다. 도시 사람들이 단절을 잠깐 만지고 돌아가는 관광 상품으로 다뤘기 때문입니다. 1박 2일 다녀가서 사진 찍고 떠나는 자리는, 떠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풍경이지만 사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리가 아닙니다. 풍경을 사고팔 수는 있어도, 자리를 사고팔 수는 없습니다.

안쪽의 관성은 조금 더 아픕니다. 단절을 자랑하지 못하고 부끄러워한 자리. "여기 뭐 있어요"라는 말을 한 발 물러서며 손사래로 받아낸 자리. 산나물 축제와 얼음 축제로 단절을 가렸지만, 가린다고 사라지는 정체성이 아니었던 자리. 우리 안에서 우리를 한 번도 똑바로 부르지 않은 시간이, 가장 깊은 관성이었습니다.

카미야마가 이미 보여준 그림

일본 토쿠시마현에 카미야마(神山町)라는 마을이 있습니다. 도쿄에서 600킬로미터 떨어진 산촌으로, 1995년에 21,000명이던 인구가 2050년이면 5,400명으로 줄어들 것이라 예측되는 곳입니다. 일본에서는 이런 마을을 한계취락이라 부릅니다. 마을의 자치 기능이 더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려워진 자리를, 그렇게 부릅니다.

2011년, 그곳의 그린 밸리(Green Valley)라는 작은 비영리 단체가 한 가지 역발상을 가지고 행동에 옮겼습니다. 도시의 IT 회사들이 시골의 빈집에 자기 사무실을 차리도록 끌어들이는 것이었습니다. "본사는 카미야마, 도쿄에는 외부 사무실 하나" — 거꾸로 박힌 지도였습니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 카미야마에는 엔지니어와 디지털 작가가 마을 인구의 한 결을 이루고 있습니다. 1999년부터 운영해 온 외국 예술가 거주 프로그램은 — 외국 예술가가 두 달쯤 마을에 머물면서 주민과 함께 작품을 만드는 자리입니다 — 마을의 정체성에 또 다른 결을 더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어야 합니다.

카미야마는 단절을 IT로 메운 것이 아닙니다. 단절을 살리면서, 그 단절 위에 IT를 새로 얹는 방식이었습니다. 시골의 고요함은 그대로 있고, 그 고요함 안에서 새로운 일이 가능하다는 가설을 마을이 통째로 검증해 보인 것이었습니다.

영양은 지금 같은 임계점 앞에 서 있습니다.

폭간트가 일으킨 돌풍

관성이 무너지려면, 큰 위기가 닥치거나 외부에서 바람이 불어와야 합니다.

위기는 한참 전부터 와 있었습니다. 영양의 인구는 매년 줄고 있고, 면 단위 학교의 폐교 행렬이 끝났다고는 아무도 자신 있게 말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위기는 너무 오래 곁에 있어서, 위기인 줄을 잊게 합니다. 위기가 일상이 되면, 위기는 위기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폭간트의 영상은 그 둔감을 잠시 깨운 바람이었습니다.

50만에 가까운 사람이 영양을 본 것은, 두들마을이 한국 문단에 처음 소개된 1979년 이래 단 한 번도 없었던 사건일 것입니다. 그것도 비하의 시선이 아니라, 오지와 청정에 대한 다정한 시선으로요. 2024년 5월의 어느 사건과 정확히 반대편의 톤이었습니다.

저는 이 바람을 두고 한 줄을 적어둡니다.

“폭간트가 돌풍 같은 바람을 일으켜 주셨고, 이게 태풍으로 될 수도 있는데 그건 우리의 몫이다.”—

이 문장을 사흘째 곱씹고 있습니다. 받은 바람을 그대로 흘려보내면, 잠깐의 바람으로 끝납니다. 받은 자리에서 한 번 더 살려보내면, 그때 비로소 태풍이 됩니다.

우리가 받는 방식 — 디톡스가 아니라 변곡점

디지털 디톡스가 아닙니다.

조금 더 정확하게 적자면,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디톡스가 아니라 변곡점입니다. AI 시대로 들어서면서 사람의 정의가 다시 쓰이고 있고,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도구의 목록도 새로 작성되고 있습니다. 지난 100년 동안의 인간과, 앞으로 100년 동안의 인간은, 같은 인간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저는 가끔 이런 상상을 합니다.

만약 무인도에 떨어진다면 무엇을 챙길 것인가. 며칠 치 음식과 물을 챙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하게 답하자면, 저는 그보다 작은 태양광 발전기 하나와, 노트북 한 대를 챙길 것 같습니다. 단, 그 노트북에는 인터넷이 끊겨도 혼자서 잘 돌아가는 AI가, 조난당하기 직전까지의 비교적 최신의 정보를 머금은 채로, 미리 깔려 있어야 합니다.

이 상상이 농담만은 아닙니다.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조건의 목록이, 정말로 그렇게 바뀌어 가고 있습니다. 클라우드가 떨어져도 손에서 작동하는 도구, 외부의 신호 없이도 어제까지의 인류 지식을 옆에 두고 대화할 수 있는 도구 — 다음 시대의 인간이 손에 들고 있어야 할 것들의 목록이 거기 있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단절을 통해서 깊이 사유했습니다. 우리도 한 번은 모든 것을 끊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끊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끊는 것과, 끊긴 자리에서도 손에 잡아둬야 할 필수불가결한 도구를, 함께 가지고 가야 합니다.

AI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 무엇을 손에 들고 있어야 하는가. 모든 것이 연결된 자리에서만 잘 작동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이 끊긴 자리에서도 작동할 수 있는 사람 — 그것이 다음 시대의 인간이 손에 들고 있어야 할 자기 도구입니다.

400년 전 갈암 이현일이 입암면의 산골에서 학통을 묶은 자리에서, 우리는 다음 100년의 도구를 묶어보려 합니다. 단절은 그때도 자산이었고, 지금도 자산입니다.

폭간트가 일으킨 바람이 태풍이 될지 잠깐의 바람으로 흩어질지는, 폭간트의 영상이 정하지 않습니다. 영양이 정합니다. 영양에서 그 바람을 어떻게 받느냐가, 다음 한 수의 모양을 정합니다.

Reference

영양군AI협회 · SF:// · 원문 보기단절이 자산이다영양의 단절은 결핍이 아니라 사유의 조건이며, AI 시대 다음 100년의 인간이 손에 들고 있어야 할 자기 도구의 산실이다. 폭간트가 일으킨 돌풍은, 우리가 받아 태풍으로 만들어야 할 첫 바람이다.yyaia.org/p/RWDdXsuGh0OjFthGpXiC
한국의 종가 한옥 마을 — 산이 마을을 감싸안은 자리. 어둠 속 한 점 빛은, 누군가 아직 깨어 있다는 신호다. (그림=AI 생성 · 원문 수록본)
어두운 산기슭 한가운데, 작은 태양광 발전기 옆에 펼쳐진 노트북. 모든 것이 끊긴 자리에서도 작동하는 도구가, 다음 시대의 인간이 손에 들고 있어야 할 자기 도구다. (그림=AI 생성 · 원문 수록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