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하리의 밤하늘은 유난히 깊고 맑았다. 별들은 먼 하늘에 박혀 있는 것이 아니라 금방이라도 산과 들 위로 쏟아져 내릴 듯했다. 저마다 크기와 빛깔은 달랐지만, 어느 것 하나 서둘러 빛나지 않았다.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켜 온 듯 묵묵히, 그러나 영롱하게 어둠을 밝히고 있었다.
산허리에도 별 몇 점이 걸려 있었다. 하늘과 산의 경계가 희미해지는 새벽녘, 별빛은 산등성이를 따라 조용히 내려앉았다. 밤새 먼 길을 건너온 별들이 동이 트기 전 잠시 쉬어 가는 것만 같았다. 바라볼수록 마음은 고요해지고, 고요해질수록 더 많은 별이 눈에 들어왔다.
풀숲에서는 아직 잠들지 못한 풀벌레들이 가느다란 울음을 이어 갔다. 그 소리는 적막을 깨뜨리기보다 오히려 새벽의 고요를 더욱 깊게 했다. 귓전을 스치는 바람은 한여름이라는 사실이 무색할 만큼 서늘했다. 밤이 품었던 풀잎의 향기와 산의 기운을 실어 나르며 내 곁을 맴돌았다.
도시의 밤은 불빛으로 환하지만, 수하리의 밤은 어둠으로 깊다. 그 깊은 어둠이 있어 별빛은 더욱 또렷해진다. 어둠은 빛을 삼키는 것이 아니라, 작은 빛 하나까지 귀하게 드러내 주는 넉넉한 품인지도 모른다. 수하리 밤하늘 보호공원에 서 있으니, 별을 보기 위해서는 먼저 어둠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곧 여명이 밝아올 것이다. 동쪽 하늘이 푸르게 열리기 시작하면 수줍게 반짝이던 별들도 하나둘 아침빛 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별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밝음에 가려 잠시 보이지 않을 뿐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실을, 새벽하늘은 말없이 일러 주었다.
밤과 아침이 맞닿는 짧은 시간, 나는 까닭 없이 오늘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별빛 아래 서 있는 이 순간 자체가 이미 좋은 일인지도 모른다. 산허리에 머문 별과 풀벌레의 울음, 서늘한 새벽바람이 마음속 묵은 생각을 씻어 내고 맑은 기운 하나를 놓아 주었다.
내 고장 수하리는 이래서 아름답다. 화려하게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도 하늘과 산, 바람과 풀벌레가 저마다의 자리에서 깊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오래 바라보아야 보이는 빛이 있고, 가만히 귀 기울여야 들리는 소리가 있다. 그 조용한 아름다움은 언제나 같은 자리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별빛은 곧 여명 속으로 물러가고, 산과 들은 천천히 아침의 빛깔을 되찾을 것이다. 늘 그랬던 것처럼 수하리에는 다시 하루가 시작된다. 익숙하면서도 날마다 새로운 고향의 아침 앞에서 나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오늘의 행복을 생각한다.
8월 한여름, 수하리 밤하늘 보호공원에서 맞은 새벽. 그날의 별빛은 오래도록 내 마음속에서 반짝일 것이다. 오늘도 수하리는 아름답고, 나는 이곳에서 행복한 고향의 아침을 맞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