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잎 사이사이 고향의 여름을 다 익혀 낸 듯 빨간 고추가 탐스럽게 매달려 젖은 밭고랑까지 환하게 밝힌다.

고추잠자리 몇 마리 바람보다 가벼운 날개로 날아와 붉은 고추 위를 맴돌다가 가느다란 가지 끝에 살며시 앉는다.

어디선가 고추매미는 구성진 가락으로 울어제치고 그 소리에 고추밭이 들썩이며 한여름의 깊은 숨을 내쉰다.

아름답구나, 내 고향 영양의 고추여. 비를 견디고 볕을 품어 푸른 몸을 이토록 붉게 익힌 흙과 땀과 세월의 열매여.

오늘 아침 나는 이슬 맺힌 고추 끝에서 보석보다 환한 고향 하나를 본다. 손을 뻗으면 금세 닿을 듯한 붉고도 따뜻한 내 고향을.